
연애 중인 여성들은 종종 ‘아무도 안 볼 속옷’을 고르는 데 공을 들인다.
단순히 취향의 문제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PLOS ONE 저널(2020)에 게재된 Craig & Gray의 연구는 흥미로운 이 질문에 대한 첫 본격적인 과학적 접근을 했다.
연애 중인 미국 여성 353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는, 여성들이 속옷을 어떤 맥락에서 선택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파트너와의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밝혀냈다.
속옷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의 무려 88.7%가 “섹시한 속옷을 입는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섹시해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섹시하다고 느끼고 싶어서”였다.
유혹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 확신과 욕망의 회복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특히 육아, 직장, 가사 등으로 자아 정체성이 흐릿해지기 쉬운 30~40대 여성에게 ‘속옷’은 은밀하고도 강력한 리마인더다.
나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욕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섹시한 속옷은 ‘성관계 신호’?
그렇다면 이런 속옷은 성관계를 유도하기 위한 ‘신호’일까?
연구는 단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관계를 ‘기대’하는 날에 속옷이 더 섹시해지는 경향은 있었지만, 막상 여성이 성관계를 ‘직접’ 주도하거나 ‘유혹’할 때 속옷의 섹시함은 유의미하게 증가하지 않았다.
즉, 섹시한 속옷 = 유혹의 신호라는 가설은 데이터상으로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속옷은 ‘나 오늘 유혹할 거야’의 사인이 아니라, ‘나 오늘 즐길 준비가 됐어’라는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는 장치에 가깝다.
‘내가 더 괜찮다’ 느낄수록 속옷은 더 과감
이 연구에서 또 흥미로운 건 ‘상대의 매력’보다 자기 자신을 얼마나 매력적이라고 느끼는가가 속옷의 선택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자기 스스로의 ‘매력 점수’가 높다고 느끼는 여성일수록 속옷을 더 섹시하게 고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건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가 아니라, 자기 확신에서 나오는 선택이라는 걸 보여준다.
자존감과 관계 만족도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속옷의 섹시함은 관계 만족도나 성생활 만족도와도 정비례하는 경향을 보였다.
자기 몸을 긍정하고 즐기려는 태도와도 관련이 깊다.
속옷은, 생각보다 더 깊은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은밀한 언어였다.
속옷은 침묵 속의 자기표현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위한 선택이라 착각하지만, 사실 가장 내밀한 선택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연구에서 나타난 바는 명확하다.
여성의 속옷은 유혹의 도구도, 누군가의 시선을 위한 연출도 아니다.
자기 감각을 깨우고 스스로에게 욕망을 허락하는 방식일 수 있다.
